Story | 10 요리사 & 재료의 산책 저자 요나
다정한 기억을 그림으로 간직하다
요리사 & 재료의 산책 저자 요나님의 작품 의뢰 이야기 - 장승근 작가의 <고양이 두 마리>
계절의 재료를 연구하고 요리하며, 사진과 영상으로 다정한 기록을 남기는 요리사 요나님. 구례의 낡은 집을 고쳐 자연과 가까운 삶을 새롭게 꾸려나가려는 그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가족인 두 고양이가 있습니다. 언젠가 다가올 이별이 두려워 사진첩을 보는 것조차 망설인다는 요나님은, 너무 구체적인 슬픔 대신 영원히 아름다운 ‘작품’으로 아이들을 기억하기 위해 유로운을 찾았습니다. 서로의 체온에 기대어 잠든 고양이들의 평온한 순간,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마주한 위로의 이야기. 장승근 작가의 깊이 있는 터치로 완성된 요나님의 특별한 의뢰 이야기를 전합니다.

고양이 두 마리가 서로 뒤엉켜 편안하게 쉬고 있는 장면을 상상합니다.
의뢰인 | 요나 ( @yonayonakoh )
공간 | 구례에 새롭게 마련한 주거 및 스테이 공간
아티스트 | 장승근 ( @jangkamzza )
의뢰 내용
언젠가 고양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에 끝이 오고, 시간이 흘러 그들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진다면 몹시 슬플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따뜻한 숨결과 보드라운 털, 마주친 눈동자의 흔들림처럼 사진으로는 다 담아내기 어려운 부분들을 그림으로는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했습니다. 그림이라면 아이들을 ‘작품’으로서 영원히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로 뒤엉켜 체온을 나누는 두 고양이 ‘팥도’와 ‘나스’의 평온한 모습, 그 다정한 위로의 순간을 캔버스에 담아주세요.



제철 재료를 연구하고 요리하며 글과 사진, 영상으로 일상을 기록하는 ‘재료의 산책’ 요리사 요나님
INTERVIEW
Q1.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재료의 산책’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요리사 요나입니다. 주로 제철 재료를 공부하고 요리하며, 이를 사진이나 영상으로 기록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Q2. 유로운에 그림을 의뢰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작품 의뢰를 앞두고 고민을 정말 많이 했어요. 만약 그림을 의뢰한다면 집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두고 싶었거든요. '그렇다면 과연 무엇을 남겨야 할까'에 대해 스스로에게 계속 물었죠. 결국 고양이들을 그려야겠다는 결론에 닿았지만, 어떤 스타일로 남겨야 할지 고민이 되더라고요.
그러다 유로운 사이트에서 장승근 작가님이 예전에 그리셨던 고양이 그림을 보게 되었어요. 그 예시 작품을 보는 순간 확신이 들었죠. ‘이분에게 부탁하면 내가 정말 갖고 싶은 그림이 나오겠다’, ‘오래오래 질리지 않고 바라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최종적으로 의뢰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림의 주제가 된 요나님의 반려묘, 팥도와 나스.
Q3. 의뢰 내용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우선 모델은 저의 두 반려묘인 '팥도'와 '나스'였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사진을 똑같이 옮겨 그리는 방식은 원하지 않았어요. 너무 구체적인 묘사는 나중에 아이들이 곁에 없을 때 오히려 슬픔을 줄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작가님께 정지된 사진보다는 움직임이 암시되는 이야기, 혹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시간이 흐르는 듯한 느낌을 담아달라고 요청드렸습니다. 너무 사실적인 형태보다는 조금은 추상적인 느낌으로, 아이들이 스쳐 지나가는 찰나의 분위기가 그림에 남기를 바랐어요.
Q4. 그림의 주제가 된 고양이 두 마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원래 고양이를 키울 계획은 전혀 없었어요. 우연히 친구가 구조한 새끼 고양이들의 사진을 보게 되었는데, 실물을 본 적도 없는 아이들 사진을 보고 펑펑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때 '내가 이 아이들을 책임질 수 있다면 뭐든 하겠다'는 마음이 들어 무작정 데려오게 되었습니다.
이름은 당시 제가 망원시장의 ‘찹쌀 팥도나스’에 푹 빠져있을 때라, 먹을 것 이름을 붙이면 오래 산다는 속설에 따라 각각 ‘팥도’와 ‘나스’라고 지어주었어요.
Q5. 반려동물의 그림을 갖고싶은 마음은 어떤 것일까요?
단순히 아이들이 예쁘고 귀여워서 그림으로 남기고 싶은 건 아니에요.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알거든요. 인간과 동물의 수명 차이 때문에 언젠가는 반드시 이별의 순간이 온다는 것을요. 저에게 그림 의뢰는 그 상실의 순간에 대한 저 나름의 마음의 준비였어요.
예전에 친구가 아이들의 어릴 적 사진을 앨범으로 만들어 선물해 준 적이 있는데, 선물을 받고 기뻤지만 한편으론 덜컥 겁이 났어요. 사진은 너무 구체적이고 현실적이잖아요. 나중에 아이들이 곁에 없을 때 이 생생한 사진을 보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슬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반면 그림은 작가의 시선을 통해 재해석된 ‘작품’이잖아요. 사진처럼 사실적이지 않아서 오히려 슬픔에 빠지지 않고, 아름다운 하나의 작품으로서 아이들을 오랫동안 평온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해 주는 것 같아요.



Q6. 장승근 작가님께 의뢰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도 사실 미술을 전공했는데요, 장승근 작가님의 그림을 보자마자 '내가 만약 그림을 그린다면 딱 이렇게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색을 쓰는 방식이나 대상을 형태로 잡아내는 느낌이 제 마음속에 있는 결과 무척 닮아 있었거든요. 저에게는 가장 편안하고 깊이 있게 다가와서, 망설임 없이 바로 의뢰를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Q7. 처음 에스키스를 받아보셨을 때 어떤 느낌이 드셨나요? 또 최종 시안을 고른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선 에스키스를 두 가지나 보내주셔서 깜짝 놀랐어요. 단순히 의뢰를 받고 결과물을 툭 던져주시는 게 아니라, 중간 과정에서 저에게 선택권을 주시는 배려가 느껴져서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건, 제가 보내드린 몇 장의 사진만으로 아이들의 특징과 성격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계셨다는 점이에요. 에스키스를 보자마자 ‘이분은 이미 아이들에 대해 다 알고 계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제가 원했던 느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죠.
사실 두 시안 모두 너무 마음에 들어서 하나를 고르기가 정말 어려웠어요. 아주 미세한 형태의 차이로 최종 시안을 선택하긴 했지만, 작가님께 이렇게 말씀드렸어요. “저는 이 시안이 좋지만, 작가님이 작업하시다가 다른 방향이 더 좋다고 느끼시면 그걸로 진행해 주셔도 돼요.” 그만큼 작가님의 감각을 온전히 신뢰하고 맡기고 싶었습니다.

Q8. 완성된 작품을 처음 받아보셨을 때 어떠셨나요?
절대 울지 말아야지 다짐했는데, 포장을 뜯고 그림 속 아이들의 발이 보이는 순간부터 이미 코끝이 찡해졌어요.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마음에 들었고, 실물보다 더 잘생기게 그려주셔서 고맙기도 했고요(웃음).
무엇보다 작가님이 함께 보내주신 편지가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제가 처음 의뢰할 때는 ‘조금 추상적인 느낌’을 원했었는데, 작가님이 편지에 ‘나중에 아이들을 추억할 때는 너무 추상적인 것보다 아이들의 모습이 어느 정도 구체적으로 표현되는 게 더 좋을 것’이라는 조언을 적어주셨더라고요.
작가님도 고양이 집사였던 경험이 있으셔서 그런지, 제가 어떤 마음으로 이 그림을 의뢰했는지 그 깊은 속내까지 다 헤아려주신 것 같아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Q9. 새롭게 마련한 구례의 공간은 어떤 곳인가요? 그리고 완성된 작품은 어디에 걸고 싶으신가요?
오랫동안 꿈꿔왔던 자연과 가까운 삶을 실현하기 위해 서울을 떠나 이곳 구례로 왔습니다. 우연히 마주친 풍경에 반해 연고도 없는 이곳에 터를 잡고, 작년 한 해 동안 낡은 집을 직접 고치며 공간을 마련했어요. 앞으로 이곳에서 제철 요리를 선보이거나, 여행자들이 머물다 갈 수 있는 스테이(Stay)도 운영할 계획입니다.
그림은 1층에 있는 고양이들을 위한 공간에 두려고 해요. 캣타워 대신 아이들이 오르내릴 수 있도록 단을 높여 만든 책장이 있는데, 그곳 창가에 앉아 바깥 구경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아이들이 그곳에 머물 때 그림과 실제 모습이 함께 어우러지는 풍경을 보고 싶습니다.
사실 제가 그림을 전공해서인지 남의 그림을 집에 잘 걸지 못하는 편인데, 작가님의 그림은 보자마자 제 공간에 꼭 두고 싶었어요. 제가 서울을 오가며 집을 비울 때나, 언젠가 아이들이 곁에 없는 순간이 오더라도 이 그림이 늘 그 자리를 따뜻하게 채워주는 역할을 해주리라 믿습니다.
Q10. 유로운의 작품 의뢰 과정을 경험해보신 소감이 궁금합니다.
우선 의뢰하는 첫 단계부터 정말 흥미로웠어요. 사실 내 머릿속에 있는 막연한 느낌을 말로 표현하기가 참 어렵잖아요. 그런데 제공해 주신 '의뢰 키트'의 빈칸을 게임 하듯 하나씩 채워가다 보니, '아, 내가 진짜 원하는 게 이거였구나' 하고 스스로 깊이 고민하고 알게 되는 시간이 되더라고요.
무엇보다 작가님과 저 사이에서 유로운이 든든한 중재자가 되어주어서 마음이 편했습니다. 그림을 갖고 싶어도 어떻게 부탁해야 할지 막막할 때가 많은데, 중간에서 전문적으로 조율해 주시니 안심이 되었죠.
단순히 '주문하고 받는다'는 느낌보다는 마치 상담을 받는 듯한 기분이었어요. 친절하게 방향을 잡아주시고 제안해 주시는 과정 자체가 저에게는 큰 설렘이었고, 그 소통의 과정에서 이미 마음이 치유받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Q11. 유로운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요?
한마디로 정의하기 참 어렵지만, '그림에 대한 진입장벽을 엄청나게 낮춰주는 곳'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보통 사람들은 그림을 갖는다는 것 자체를 상상하지 못하거나, 나와는 관련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겁을 내기도 하거든요.
특히 기성 작품을 살 때는 '지금은 좋지만 나중에 질리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들 수 있는데, 유로운을 통한 그림은 '나를 담아낸 그림'이잖아요. 나의 이야기가 담겨 있으니 쉽게 싫어질 리 없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좋아질 수밖에 없죠.
그런 의미에서 유로운은 작가와 의뢰인 서로를 가깝게 이어주고, 그림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마음껏 즐길 수 있게 해주는 정말 감사한 플랫폼입니다.
Q12. 유로운을 어떤 분들께 추천하고 싶으신가요?
마음이 허하거나, 주변의 물건들로는 채워지지 않는 결핍을 느끼는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어요.
내 비용과 시간을 들여 그림을 의뢰하려면 ‘내가 지금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일까?’, ‘나에게 무엇이 부족해서 이럴까?’를 심사숙고하게 되거든요. 그 치열한 고민의 시간 속에서 이미 마음의 빈자리가 채워지고 문제가 해결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단순히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보는 고민의 시간이 필요한 분들에게 꼭 권하고 싶습니다.



“13년간 키우던 고양이가 하늘나라로 떠난 뒤 비로소 마음 편히 고양이를 그릴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엔 고양이와 감정적으로 매우 가까운 상태에서 고양이를 그리기 싫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행위는 대상과 거리감을 두지 못하고 감정이나 형상에 호소하거나, 그림에 사적인 이야기를 과하게 담을 것만 같았습니다. 제 경험상 지나치게 가까운 관계는 언제나 바람직하지 않았으며, 그것은 제가 회화에서 추구하는 방식은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가끔, ‘지나치게 가까운 관계에서 그린 그림을 남겨 놨더라면’이라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합니다. 저는 기억하기보다 추억하기를 좋아합니다. 기억보다 추억이 좋은 이유는 시간이 엉겨 붙어 객관적 사실과는 멀어지고, 곡해된 채 부드러운 결을 지니게 된다는 것입니다. 열화된 기억에서 그저 아름다웠다고 오해한 채로 남겨 두는 그 시간들은, 삶의 무게를 견뎌 낼 만한 이야기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의뢰자 분의 사연과 추상성을 희망하는 요청 사항들을 읽고서,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앞으로 다가오게 될 추억의 시간을 맞이하기 위해 의뢰를 요청하신 게 아닐까 상상해 보며 그림을 그렸습니다.
'사연자 분이 고양이를 대하는 친절한 태도, 애틋함, 그와 동시에 차오르는 초연함, 적당한 거리감과 같은 정서적 질감을 시각화하는 것에 충실하자'라는 생각으로 어물어물, 우둘투툴한 붓질을 사용했습니다. 고양이들의 몸과 놓여 있는 배경의 색면, 추상성을 강조하여 제 손이 가는 대로 번역해 보았습니다.
엉겨 붙은 고양이들의 윤곽은 서로의 영역을 드나들게끔 표현하고, 고양이들을 쓰다듬듯 바라보는 의뢰자 분의 시선을 상상하며 형상의 윤곽선을 긋고, 정서적 질감을 시각적으로 드러내기 위해서 요철감이 있는 붓질로 그림을 그려 냈습니다.
이런저런 말들을 많이 썼지만, 사연자분께서 바라보기 나름인 그림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여 제목도 어떤 제 상념을 투영하기보다 그냥 담백하게 '고양이 두 마리'로 지었습니다. 제가 고양이들과의 추억을 기념하게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