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 05 매거진 C 디렉터 전은경
나만의 세계를 한 점의 그림에 담다
매거진 C 디렉터 전은경님의 작품 의뢰 이야기 - 정이지 작가의 <셰즈 롱그와 매거진 C>
샤를로트 페리앙(Charlotte Perriand)이 셰즈 롱그(Chaise Longue)에 누워 고개를 돌린 모습, 그 인상적인 흑백 사진에서 영감을 받은 전은경 디렉터. 의자를 다루는 매거진 <C>를 만드는 그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이 의자에 기대어 보내는 고요한 시간을 그림으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정이지 작가의 손길을 거쳐 함께 완성한 작품 <셰즈 롱그와 매거진 C>은 단순한 초상이 아닌, 전은경 디렉터의 취향과 삶이 고스란히 담긴 하나의 장면이 되었는데요. 가장 편안한 자리에서 오래 바라보게 될 이 그림을, 지금 함께 들여다봅니다.

셰즈 롱그(Chaise Longue)에 누워 보내는 나만의 시간을 그림으로 남기고 싶습니다.
의뢰인 | 전은경 (@jeon.eunkyung)
공간 | 수집 중인 의자들이 있는 주거공간
아티스트 | 정이지 (@jeong_yiji_ )
의뢰 내용
“나는 거친 서부 광야에서 파이프를 피우며 발을 머리보다 높게 들어 굴뚝을 향하게 하고 있는 카우보이를 생각했다. 이 의자야말로 진짜 휴식을 위한 장치다.”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가 남긴 이 말처럼, 저에게 이 의자는 ‘완전한 휴식’을 상징하는 존재입니다.
흔히 르 코르뷔지에의 이름을 딴 ‘LC4’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 의자는 피에르 잔느레(Pierre Jeanneret)와 샤를로트 페리앙(Charlotte Perriand)과의 협업으로 탄생한 작품입니다. 최근에는 제조사 카시나(Cassina)에서 본래 이름인 ‘셰즈 롱그(Chaise Longue)’로 다시 명명하고 있죠. 이 의자에 대한 오랜 애정이 이번 그림 의뢰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특히 제가 오마주하고 싶었던 장면은, 이 의자에 길게 누운 채 우아하게 고개를 돌리고 있는 샤를로트 페리앙의 흑백 사진입니다. 처음 그 사진을 본 이후, 언젠가는 나도 이 의자에 누워 있는 나만의 모습을 기록해두고 싶다고 생각해 왔어요. 저는 평소 집에서 이 의자에 기대어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가끔은 낮잠을 자며 온전한 휴식을 즐기고는 합니다. 잠을 자거나 식사할 때를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의 휴식이 이 의자에서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래서 이 장면을 가장 좋아하는 의자 곁에 둘 그림으로 남기고 싶습니다. 참고로, 저의 ‘셰즈 롱그’는 브라운 가죽 시트에 블랙 가죽 헤드레스트가 더해진 모델입니다.


매 호 하나의 의자를 다루는 매거진 <C> 디렉터 전은경님
INTERVIEW
Q1.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저는 매거진 <C>를 만들고 있는 전은경입니다. 이전에는 약 20년간 월간 <디자인>에서 기자, 편집장, 디렉터로 일하며 국내외 디자이너와 브랜드를 인터뷰하고 다양한 디자인 영역과 프로젝트, 전시, 공간, 트렌드에 관한 콘텐츠도 기획해 왔습니다. 지금은 매 호 하나의 의자를 다루는 매거진 <C>를 론칭해, 콘텐츠 디렉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Q2. 유로운에 그림을 의뢰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저는 오랫동안 디자인을 주제로 글과 사진을 다루는 콘텐츠를 만들어왔어요. 주로 인쇄 매체, 그러니까 책이나 매거진 같은 형태였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좋아하고 다루는 것들을 꼭 글과 사진이 아니라, 또 다른 시각적인 매체로 표현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유로운을 통해 그 생각을 이번에 처음으로 실현하게 된 것 같고요.
저는 디자이너는 아니지만 늘 디자이너들과 협업하면서 책이라는 결과물을 만들어왔고, 제가 하는 많은 일도 협업자가 있어야 가능한 작업이에요. 이번 그림 의뢰도 마찬가지였어요. 유로운이라는 좋은 매개로 정이지 작가님을 만났고, 함께 그림이라는 시각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낸 것이 참 의미있었어요.


전은경 디렉터는 가장 좋아하는 의자, 셰즈 롱그(Chaise Longue)에 누워 있는 시간을 그림으로 의뢰했다.
Q3. 의뢰 내용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샤를로트 페리앙(Charlotte Perriand), 피에르 잔느레(Pierre Jeanneret),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가 함께 디자인한 ‘셰즈 롱그(Chaise Longue)’에 누워 있는 나만의 시간을 그림으로 의뢰했어요.
셰즈 롱그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의자예요. 10년쯤 전에 꽤 큰 결심을 하고 구입했는데, 그때 “내가 할머니가 될 때까지 이 의자에 앉아야지”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있어요. 실제로 지금까지 가장 자주 사용하는 가구이자, 가장 아끼는 물건이고요. 그래서 이 의자에 누워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낮잠을 자는 일상의 풍경을 그림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Q4. 샤를로트 페리앙이 자신이 디자인한 의자에 앉아있는 장면을 모티프로 작품을 의뢰하셨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특히 오마주하고 싶었던 이 장면은, 샤를로트 페리앙이 셰즈 롱그에 길게 누워 고개를 살짝 돌리고 있는 흑백 사진이에요. 꽤 유명한 이미지인데요. 처음엔 그 사진 속 인물이 페리앙인지도 몰랐고, 의자의 정체도 모른 채 그냥 ‘좋다’는 마음이 먼저 들었어요. 그러다 디자인 매체에서 일하게 되면서 그 주인공이 페리앙이고, 의자가 셰즈 롱그라는 걸 알게 됐죠. ‘아, 내가 좋아했던 그 사진의 모든 배경이 이렇게 이어지는 거였구나’ 싶더라고요.
그런 맥락에서 보면, 이번 그림은 제가 좋아하는 디자인, 제가 살아가는 방식, 그리고 제가 해온 일들까지 모두 아우르는 어떤 ‘자화상’ 같은 것이기도 해요. 그래서 더 오래 곁에 두고 싶고, 저 자신을 담은 하나의 장면으로 기억되기를 바랐어요.
Q5. 정이지 작가님께 의뢰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정이지 작가님의 작품을 처음 본 건 국제갤러리에서였어요. 매주 토요일마다 운동을 하러 그 근처를 자주 가는데, 그날도 들렀다가 여러 작가님의 그룹 전시를 보게 되었죠. 처음에는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지만, 어디서 본 듯한 익숙한 그림이 눈에 들어왔어요. 나중에 유로운 웹사이트에서 살펴보니, 그 익숙했던 그림이 정이지 작가님의 작품이었어요.
저는 무언가를 결정하기 전에는 꽤 오랜 시간 디깅하는 편이에요. 막상 의뢰를 결심하고 나니 작가님들의 스타일을 하나하나 뜯어보게 되더라고요. 정이지 작가님은 인물을 클로즈업한 작품도 있고, 사물이나 풍경을 표현한 그림도 있는데, 그 다양함이 인상 깊었어요. 특히 ‘공간감’이나 ‘공기 같은 분위기’를 잘 포착해내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원하는 그림이 명확히 초상화는 아니었고, 또 그렇다고 사물을 묘사해달라는 것도 아니었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의자에 앉아 있는 장면이지만, 그 장면의 정체성은 사람이라기보다는 ‘공간의 공기와 감각’에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미묘한 중간 지점을 잘 표현해줄 수 있는 작가라고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이지 작가님만의 개성 있는 색감과 스타일이 좋았어요. 내가 완전히 드러나는 초상화를 의뢰할 정도로 에고가 강하지는 않지만, 내가 좋아하는 물건, 자주 있는 자리, 머무는 풍경 안에 ‘나’도 조용히 들어가 있는 그런 그림을 상상했어요. 그런 정서가 작가님과 잘 맞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고, 작가님께 의뢰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죠.



정이지 작가가 셰그 롱즈가 있는 전은경 디렉터의 공간을 방문해 스케치 작업을 진행했다.
Q6. 유로운의 일반적인 의뢰 과정과 달리, 작가님이 직접 공간을 방문해 스케치를 진행하셨는데요. 이 과정은 디렉터님께 어떤 경험으로 남았나요?
저한테는 굉장히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작가님이 직접 오신다고 했을 때, 한편으론 반가우면서도 ‘혹시 부담을 드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어떤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좋을까, 어떻게 응대해야 할까 고민도 됐고요. 그런데 그런 복잡한 마음보다 훨씬 컸던 건, ‘기대’였던 것 같아요.
저는 평소에도 ‘작가가 누구냐’는 점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요. 만약 그 장면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다면, 사진가와 포즈를 상의하며 촬영할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그림은 다르잖아요. 그려내는 사람의 해석이 고스란히 반영되는 작업이니까, 누가 그리느냐가 정말 중요했어요. 그래서 정이지 작가님을 직접 만나보고 싶기도 했고요.
저는 ‘작품은 작가와 완전히 분리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미술은 작가의 인격이나 감각이 작품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고 느껴요. 그래서 작가님을 직접 만나고, 인사하고, 얘기 나누는 시간이 무척 소중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제가 작가님께 ‘잘 보이고 싶었다’는 표현이 제일 적절하겠네요.
작가님이 현장에서 크로키를 세 가지 정도 보여주셨고, 저는 그 자리에서 최대한 편안하게 제 모습을 보여드렸어요. 그리고 나머지는 온전히 작가님의 몫이라고 생각했어요. 어차피 제가 고심 끝에 선택한 작가님이고, 그만큼 스타일도 신뢰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셔도 충분히 만족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작가님이 “편하게 원하는 걸 말씀해 주세요”라고 해주셔서, 그 소통 과정도 정말 좋았습니다. 너무 열어두기보다는 어느 정도 방향을 이야기해주는 게 서로에게 더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제가 상상하던 장면을 최대한 잘 포착해주시려는 작가님의 태도가 정말 인상 깊었고, 그 과정 자체가 저에게도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Q7. 완성된 작품을 처음 받아보셨을 때 어떠셨나요?
사실 그 순간까지도 마음속엔 두근거림과 약간의 걱정이 함께 있었어요. 유로운에서 중간 소통을 워낙 섬세하게 해주셨지만, 결과물을 직접 보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잖아요. 혹시나 예상과 너무 다르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특히 저는 표정으로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스타일이라, 내심 걱정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작품을 받자마자 실눈을 뜨고 조심스럽게 봤어요. 그런데 첫인상부터 마음에 쏙 들었어요. 제가 드렸던 사진이 있었기 때문에 ‘너무 그 장면 그대로일까 봐’ 혹은 ‘너무 달라져 있을까 봐’ 걱정이 있었는데, 오히려 그 사이 어딘가 적당한 지점에서 두 감각이 잘 섞여 있었어요. 제가 떠올렸던 장면도 잘 표현돼 있었고, 동시에 정이지 작가님의 손길과 스타일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었어요. 그 두 가지가 모두 살아 있어서 정말 기뻤습니다.
‘이건 꼭 자랑해야겠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고요. 그래서 이 그림을 걸고 나서 지인들을 초대해 작은 파티를 열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정말 특별한 날 마시려고 아껴둔 샴페인을 드디어 꺼내야 할 때가 왔다는 생각을 했죠. 어쩌면 제 생일이나 다른 기념일보다 더 의미 있는 날인 것 같아요.
저에게 이 그림은 어떤 면에선 ‘저 자신에 대한 그림’이자, 스스로에게 주는 하나의 선물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더 소중하게 느껴지고, 오래 간직할 것 같습니다.


<셰즈 롱그와 매거진 C> 정이지, 캔버스에 유화, 65 x 53 cm, 2025
Q8. 작품이 이 공간에서 어떤 역할을 하기를 기대하시나요?
처음부터 이 그림은 4층에 걸고 싶었어요. 제가 가장 아끼는 셰즈 롱그도 그 공간에 있고, 그 의자가 있는 방이 제가 가장 편하게 느끼는 곳이거든요. 그 방은 욕실이 함께 있는 저만의 공간인데, 하루 중 가장 자주 드나드는 곳이에요.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바로 움직이긴 좀 힘들잖아요. 저는 그럴 때 늘 그 의자에 누워 잠시 ‘뜸 들이는 시간’을 가져요. 말 그대로, 밥을 뜸 들이듯이요. 정신을 차리기 전까지 잠깐 멍하니 누워 있는 거죠. 아무 생각도 안 하고 바깥을 바라보는 그 시간이 저에게는 꽤 중요해요.
이 그림은 바로 그 공간에, 그 의자 옆에 걸어둘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의자’와 ‘그 의자에서 쉬는 나’가 함께 있는 그림이 실제 그 장소에 놓이는 셈이죠. 뭔가 상징적으로도 그 공간의 의미가 완성되는 느낌이에요. 아마 더 자주 그 의자에 앉아서 그림을 바라보게 될 것 같습니다.
특히 그림을 건 자리는 의자에 누워 있을 때 정면으로 딱 보이는 위치예요. 앞에는 북악산도 있고, 옆에는 그림도 있고요. 그런 장면을 상상해요. 의자에 누워, 그림을 바라보고 있는 나 자신. 그 시간을 충분히 즐겁게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위한 좋은 순간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Q9. 유로운의 작품 의뢰 과정을 경험해보신 소감이 궁금합니다.
이렇게 작가에게 직접 ‘의뢰’를 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요. ‘개인이 작가에게 그림을 의뢰할 수 있다’는 개념이 익숙하지 않았는데, 유로운을 통해 그 가능성을 발견한 순간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재미있겠다”는 직감이 있었고, 실제로 경험해 보니 기대 이상으로 즐거웠어요.
다만, 직접 해보니 크게 두 가지 고민이 생기더라고요. 하나는 작가를 선택하는 일, 또 하나는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을 정리하는 일. 작가님의 스타일이 워낙 다양하다 보니 무엇을 요청할지, 어떤 방향으로 갈지 결정하는 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 자체가 하나의 작업 기획이자 창작 과정의 일부처럼 느껴졌어요.
그런 의미에서 유로운의 작품 의뢰 과정은 단순한 그림 주문이 아니라, 작가와 함께 만들어가는 협업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림이 완성되기까지 무엇을 원하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그것을 표현해줄 사람을 찾고, 또 함께 대화하고 만들어가는 모든 순간이 저에게는 새롭고 특별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정말 만족스러운 경험이었고, 그림이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나 자신을 표현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Q10. 유로운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요?
저에게 유로운은 ‘작가와 함께 만들어가는 나만의 이야기’였습니다. 유로운에서 그림을 의뢰한다는 건, 단순히 ‘내가 원하는 장면을 누군가에게 맡겨 그리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해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어떤 분위기와 감정이 담기길 원하는지를 먼저 저 자신부터 명확히 알아야 했고, 그걸 작가님의 언어로 어떻게 해석해낼 수 있을지를 함께 고민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 모든 과정이 하나의 ‘작품 공동 기획’처럼 느껴졌어요. 그래서 저는 유로운을 ‘나만의 이야기’를 작가와 함께 완성해가는 아주 섬세하고 창의적인 협업의 경험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Q11. 유로운을 어떤 분들께 추천하고 싶으신가요?
저는 유로운을 자기 자신에게 멋진 선물을 주고 싶은 분, 그리고 나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남겨보고 싶은 분께 추천하고 싶어요.
저도 처음에는 “재미있겠다, 특별하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막상 작품을 받아보니 그 안에 제가 살아온 시간들, 해왔던 일들, 좋아하는 것들이 모두 담겨 있더라고요. 말하자면, 그림으로 남긴 자서전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림을 의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신을 돌아보게 됐어요. 내가 어떤 모습으로 남고 싶은지,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는지, 그리고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고 싶은지까지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혼자만 보는 일기장이 아니라 남에게 보여줘도 좋을 만한, 그런 중간 점검 같은 순간이랄까요. 그림이라는 매체로 나를 표현해보는 소중하면서도 낯선 기회를 만나게 된 것 같아요.
사실 역사적으로도 초상화나 커미션의 문화는 오래된 전통이잖아요. 르네상스 시대의 귀족들이 화가에게 자신을 그려달라고 의뢰했던 것처럼요. 지금은 그 표현 방식이 좀 더 현대적이고 사적인 감각으로 바뀌었을 뿐, ‘나를 남기는 방법’이라는 본질은 같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유로운은 아주 오래된 전통을 이 시대의 언어로 새롭게 해석한 특별한 서비스라고 생각합니다.



“보여주셨던 레퍼런스가 클래식하고 매우 아름다워서 잘 참고하면서, 제 그림 중에 선택해주신 <퍼포먼스>처럼 햇살이 가득한 시원하고 경쾌한 느낌을 더해보고자 했습니다. 의자와 인물이 가진 조형적 쾌를 고스란히 살리고 싶어 작은 터치로 세밀하게 물감을 올린 부분도 있고, 아름답게 쭉 뻗은 동세를 표현하기 위해 빠르고 단단한 붓질로 그려 그와 대조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인물과 가구에 집중하기 위해 배경은 다소 생략되고 변형되었는데요, 방 한가득 쏟아지던 햇살과 클래식 FM의 음악소리가 잘 담기길 바라며 여백의 색과 명암을 섬세히 조정했습니다. 덕분에 의미있는 시도와 즐거운 시간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