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 03 JAEIN 이재인

맛의 철학을 그림으로 번역하다

JAEIN 이재인 셰프의 작품 의뢰 이야기 - 김한나 작가의 <Whole>

한남동에서 파티세리&바 재인(JAEIN)을 운영하며 제철 재료의 감각과 색을 담은 디저트를 선보이는 이재인 셰프. 디저트를 하나의 창작 경험으로 확장하고자 하는 그는 유로운을 통해 자신의 철학과 감각을 시각 언어로 풀어내는 작업을 김한나 작가님께 의뢰했습니다. 감각적인 색감과 입체적인 질감이 돋보이는 작품은 재인의 디저트 세계와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었는데요. 오감을 자극하는 디저트와 시각 언어의 만남,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마주한 고민과 발견들을 들어보았습니다. 

www.yourown.kr

COMMISSION DETAILS

식재료가 가진 자연스러운 색이 물, 공기, 지방을 만나 자연스러운 형태(일그러진 구)로 표현되었으면 합니다.

의뢰인 | 이재인 
공간 | 파티세리 재인 (@patisserie.jaein)
아티스트 | 김한나 (@hannakim.info)

의뢰 내용
디저트를 만들면서 자주 드는 생각 중 하나는 ‘자연이 만든 것을 인간의 기술로 담아낸다’는 점입니다. 맛의 밸런스를 위해 설탕이나 구연산 같은 재료를 가미하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테크닉은 물, 공기, 지방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프렌치 디저트라면 더욱 그렇고요. 

이번에 만들 디저트는 기본적으로 제철, 로컬 재료를 퓨레 상태로 만들어 물, 공기, 지방을 섞어 질감을 완성해보려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접시에 담아 표현해 보고 싶어요. 접시에 담기면 중력에 의해 자연스럽게 일그러진 구의 형태가 되겠지요. 푸릇한 청사과, 달콤한 복숭아, 상큼한 자두, 뽀얀 깨즙, 부드러운 옥수수 등으로 완성될 예정입니다.

저는 이 생각을 바탕으로, 식재료가 가진 자연스러운 색이 물, 공기, 지방을 만나 자연스러운 형태(일그러진 구)로 표현되는 작품을 의뢰하였습니다.


파티세리 앤 바 JAEIN을 통해 독창적이고 정교한 디저트를 선보이고 있는 이재인 셰프

INTERVIEW

Q1.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한남동에서 파티세리 앤 바 재인(Patisserie & Bar JAEIN)을 운영하는 이재인 셰프입니다. 시즌별 제철 과일과 재료를 활용해 새롭고, 다양하고, 독창적인 디저트를 선보이고 있어요. 디저트와 잘 어울리는 칵테일을 페어링하여 즐길 수 있는 바도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Q2. 유로운에 그림을 의뢰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저는 크리에이티브한 작업을 하는 사람으로서, ‘디저트를 넘어서 내가 가진 것들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늘 가지고 있어요. 제가 하는 일은 단순히 필요한 것을 만드는 작업이라기보다, 하나의 경험을 제안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디저트라는 매체를 통해 누군가의 기억이나 감각에 닿는 방식, 그리고 그 경험을 어떻게 더 깊이 있게 전달할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합니다. 그러다 보니, 이번에는 ‘내가 추구하는 가치나 방향성’을 좀 더 시각적인 형태로 풀어볼 수는 없을까? 하는 물음이 자연스럽게 생겼어요. 그래서 유로운을 통해 작품을 의뢰하게 되었습니다. 맛뿐만 아니라 시각적 경험,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철학까지 - 이 모든 것을 고객에게 새로운 방식으로 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이 과정이 저 자신을 다시 들여다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습니다.

Q3. 의뢰 내용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제가 디저트를 만들 때 가장 많이 사용했던 소재는, 예전에는 지방(fat)이었어요. 프렌치 디저트를 기반으로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지방의 활용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되거든요. 그런데 작업을 계속 이어오면서, 점점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자연에서 나오는 재료들을 공기, 물, 지방 같은 요소를 통해 어떻게 다채롭고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이번 의뢰의 핵심 키워드는 바로 이 질문에서 시작됐습니다. 자연에서 나오는 재료들을 공기와, 물, 지방이라는 감각적인 매개를 통해 어떻게 시각적으로 풀어낼 수 있을지 그 결과물이 궁금했어요. 또, 그 과정을 다른 창작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어떤 형태로 번역될까? 하는 호기심도 있었어요. 이번 의뢰는 그런 의미에서, 제 작업 속 물성과 감각을 또 다른 언어로 옮겨보는 시도이기도 했습니다.

Q4. 김한나 작가님께 의뢰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첫 번째 이유는 유로운의 추천이에요. ‘이런 키워드를 이야기했을 때, 어떤 작가님을 연결해줄까?’ 하는 기대가 있었는데, 그 기대를 정확하게 채워주셨죠. 저는 미술계에 연결된 경험이 없어서 작가님들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거든요. 그런데 유로운에서 김한나 작가님을 추천해주셨고, 웹사이트에서 예시 작품을 처음 봤을 때 직관적으로 확 끌리는 느낌이 있었어요. 

무엇보다 눈에 들어왔던 건 화사한 색감이었는데요. 저도 디저트를 만들 때 색을 어떻게 연출하느냐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특히 ‘이 색이 죽지 않았는가’ 하는 고민을 많이 해요. 디저트에서는 공기, 물, 지방 같은 요소들이 섞이면서도 재료 본연의 색이 선명하게 살아 있을수록, 그 안에 담긴 자연의 맛도 같이 살아난다고 느끼거든요. 조금 더 들어가면, 엽록소나 안토시아닌 같은 색소들도 실제로 맛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늘 색을 보면서 맛을 생각하고, 반대로 맛을 상상하면서 색을 떠올리는 식으로 작업할 때 항상 색감에 많이 집중해요. 그런 면에서 김한나 작가님의 작업에는 ‘색의 맛’이 분명하게 담겨 있었어요. 그래서 이분이라면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시각적으로 잘 풀어내주실 수 있겠다’는 긍정적인 확신이 들었습니다.

Q5. 처음 에스키스(시안)를 받았을 때의 느낌은 어땠나요? 또, 최종 시안을 고른 이유는 무엇인가요?

솔직히 처음 딱 받았을 때는, “이게 뭐지?” 싶기도 했어요.

제가 미술계에서 활동하는 사람이 아니다 보니, 시각적인 언어를 해석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래서 첫인상은 조금 낯설고, 추상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아요. 그와 동시에, “실제로 완성된 작품으로 만나게 되면 어떤 감정이 들까?” 하는 기대도 함께 있었습니다. 두 가지 안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 과정에서는 결국 제 취향이 많이 작용했어요.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색감이었는데, 그 부분은 작가님이 제가 기대한 방향대로 잘 담아주셨다고 느꼈어요. 형태나 구성은 낯설었지만, 그런 점도 결국에는 작가님의 시선에서 해석된 새로운 표현이었기 때문에, 그 안에서 제가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 최종안을 선택했어요.

Q6. 완성된 작품을 처음 받아보셨을 때 어떠셨나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어요.

김한나 작가님의 작업을 그동안 화면(모니터나 휴대폰)으로만 봐왔기 때문에, 디테일한 표현까지는 잘 느끼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실물로 작품을 마주하니, 제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색감’뿐 아니라 ‘질감’이 눈에 확 들어와서 놀랐어요. 표면에 구멍이 난 듯한 표현이나, 물감이 두껍게 쌓인 터치 같은 디테일이 실제로 보이니까, 작가님이 표현하고자 한 감각이 훨씬 와닿더라고요. 화면으로는 절대 전달되지 않는 감동이 있었어요. 또, 직접 보면서 여러 각도로 관찰할 수 있다보니, 빛의 방향이나 시선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색감과 질감도 훨씬 풍부하고 입체적이라 인상 깊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실물로 작품을 마주했을 때 만족도가 컸던 것 같아요. 우리가 전시를 보러 직접 가는 이유가 이런 거구나 싶었어요. 그림을 ‘직접 보는’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느꼈습니다.

Q7. 작품이 이 공간에서 어떤 역할을 하기를 기대하시나요?

저는 이 작품이 공간에서 하나의 환기(換気) 역할을 해주길 바라요. 공간이 줄 수 있는 분위기에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잖아요. 이곳도 ‘음식’이라는 주제에 맞춰 인테리어나 테이블웨어 같은 요소들이 이미 완성되어 있는데요. 예를 들어 디저트를 내는 접시도 질감이 살아 있는 것을 일부러 선택했어요. 디저트가 주는 시각적인 인상도 중요하지만, 그걸 뒷받침해줄 배경이나 요소가 함께 있어야 더욱 완성도 있는 경험이 될테니까요. 그런 면에서 이 그림도 그런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거라 기대합니다. 공간 전체는 배경색과 요소들을 절제해 디저트가 돋보이도록 설계되어 있는데요, 김한나 작가님의 작품은 그 위에 또렷한 포커스를 만들어내는 존재감을 지니고 있어요. 매장에 오신 손님들이 디저트를 맛보며 이 그림을 바라볼 때, 제가 원하는 스토리로 설계한 흐름뿐 아니라, 다른 창작자의 감각이 자연스럽게 겹쳐지는 순간을 마주하셨으면 해요. 그래서 이 그림이 제가 만든 디저트를 다각도로 풍부하게 느끼고 감각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연결 지점이 되었으면 합니다.

Q8. 디저트와 그림 모두 창작의 결과물인데, 두 세계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크리에이티브한 작업의 공통점은 기본적으로 ‘내 안에 있는 것을 어떻게 꺼내어 표현하느냐’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요리든 그림이든 결국 표현 방식의 차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요리 중에서도 디저트는 시각적 연출의 가능성이 열려 있는 분야인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스테이크는 고기를 잘 구워 플레이팅하는 정도로 직관적으로 표현이 끝나는 경우가 많지만, 디저트는 스프레이를 뿌리고, 가니시를 올리고, 무광·유광을 조절하는 등 다양한 테크닉을 동원해 시각적 연출에 집중하며 완성해 나가는 과정이 많거든요. 

저는 경험적으로 ‘예쁜 디저트가 꼭 맛있는 것은 아니지만, 맛있는 디저트는 대부분 예쁘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데요. 그 ‘예쁨’이라는 것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 재료 본연의 색감과 질감이 살아 있을 때 더욱 아름답다는 말이거든요. 재인의 디저트들도 인공적인 장식을 최대한 덜어내고, 초콜릿 가니시를 줄이거나 자연 재료를 건조하거나 퓨레로 만들어서 활용하는 등 원재료 고유의 색감과 질감을 최대한으로 표현하는 데 집중해요. 이런 태도가 미술 작업과 통하는 지점이 있다고 봅니다. 김한나 작가님의 작품 세계를 보면, 선이나 터치의 아방가르드한 요소가 분명 있지만, 그게 날카롭게 튀지 않고 오히려 사람 손의 감각이 살아있는, 자연스러운 표현처럼 느껴지는데요. 자연물의 감각을 억지로 꾸미는 것이 아니라, 손끝 감각과 재료 본연이 겹쳐지는 지점을 찾아내는 것이 디저트와 그림이라는 창작의 접점 아닐까 생각합니다.

Q9. 유로운의 작품 의뢰 과정을 경험해보신 소감이 궁금합니다.

제 안에 있는 것들을 꺼내 표현해야 한다는 점에서 분명 어렵고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 있었어요. “지금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를 스스로에게 계속 물어보게 되더라고요. 하지만 그 과정을 거치면서 작품에 대한 몰입도와 집중도는 확실히 높아진 것 같아요. 완성된 작품을 봤을 때, 에스키스보다 훨씬 만족도가 높았고, 제 생각과 감각이 최대한 반영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만 이런 퀄리티의 결과물을 위해서 의뢰인이 어느 정도까지 디테일하게 요청을 전달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들긴 했어요.

유로운 서비스 자체는 개인적으로 아주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저는 예술이 일상의 가까운 곳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고, 전시장이나 특정 환경에서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 예술이 존재할 때 그 가치가 더 확장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유로운이 예술을 내 곁으로 끌어오는 좋은 시도라고 느껴졌어요. 누구나 접근하고 소통할 수 있는 방식으로 앞으로도 계속 발전해 나가면 좋겠고, 의뢰 과정이나 프로그램도 더욱 정교해진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이런 시도가 더 많이 이어졌으면 좋겠고 기대가 큽니다. 

Q10. 유로운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요?

‘또 다른 나의 표현’ 정도가 될 것 같아요. 제가 크리에이티브한 작업을 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늘 저를 표현하는 작업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익숙한 선 같은 게 생기거든요. 그런데 유로운은 다른 사람의 손을 통해 ‘나’를 표현해주는 방식이잖아요. 그런 과정과 결과물을 경험하면서 오히려 저를 더 잘 관찰하게 되고, 제 안의 것들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유로운은 저에게 ‘또 다른 방식의 자기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Q11. 유로운을 어떤 분들께 추천하고 싶으신가요?

크리에이티브한 작업을 하는 분들에게도 당연히 추천하고 싶지만, 오히려 예술과 평소 거리가 있다고 느끼는 분들에게 더 추천하고 싶어요. 인생에는 다양한 경험이 있잖아요. 어려움도 있고, 기쁨도 있고, 슬픔도 있고, 희망도 있고. 이런 감정이나 생각들을 모두 동일한 방식의 언어로 표현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특히 그림 같은 시각적인 표현은, 언어로 다 드러내지 못한 감정이나 생각을 대신 보여줄 수 있는 방식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유로운을 예술 경험이 익숙한 사람들보다 오히려 일상에서 예술을 많이 접해보지 못했던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어요. 유로운을 통해 자신이 살면서 쌓아온 감정과 생각을 시각적으로 펼쳐보는 경험을 하게 된다면 좋겠어요. 단순히 작품을 갖는 경험을 넘어,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김한나 작가에게 작품 의뢰 바로가기 링크
ARTIST'S LETTER | 김한나

“의뢰 내용에 보인 공기, 물, 지방이 섞여 만들어내는 크림의 질감을 홀케이크의 윗면에 담는다는 부분에 집중하여 작업하였습니다. 풍부한 케이크에 담긴 맛처럼 영감을 주는 작업으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유로운에서 나만의 작품 의뢰하기 www.yourow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