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02 | FRANZ 김동연
그 시대를 기억하는 그림을 의뢰하다
FRANZ 김동연 대표의 작품 의뢰 이야기 - 강예빈 작가의 <Once>

음악 출판사를 운영하며 음악과 독서의 교집합적 정서를 담은 굿즈를 소개하고 때로는 강연과 하우스 콘서트를 진행하는 복합문화공간, 프란츠(Franz) 를 운영하는 김동연 대표. 1900년대 중반의 예술과 디자인을 사랑하는 그는 유로운과의 첫 협업 프로젝트에서 자신만의 취향이 녹아든 오브제를 그림으로 의뢰했습니다. 그 과정과 감정을 직접 들어보았습니다.
책상과 오브제를 그려주셨으면 좋겠어요. 꽃병, 책, 메트로놈 정도가 놓여 있으면 좋겠습니다.
의뢰인 | 김동연
공간 | 프란츠 (@franz.kr)
아티스트 | 강예빈 (@yebnika)
의뢰내용
저는 출판사와 함께 음악을 나누는 공간 ‘프란츠’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1900년대 중반의 예술과 디자인을 좋아합니다. 예를 들면 샤를로트 페리앙(Charlotte Perriand)이 디자인한 공간이나 가구를 좋아하고,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을 좋아해 그에 관한 책을 펴내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미 2000년대를 살고 있고, 그 시대로 돌아갈 수도 없지만, 공간 한 켠에 그 시대를 담은 그림이 놓여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의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의뢰드리는 그림은, 책상 위의 오브제입니다. 아이보리톤이나 옅은 분홍빛의 장미 몇 송이가 꽂힌 꽃병, 자연스럽게 쌓여 있는 책 몇 권, 그리고 만 레이(Man Ray)의 메트로놈이 함께 놓여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INTERVIEW
Q1.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프란츠를 운영하는 김동연입니다. 프란츠는 음악에 대한 책을 주로 선보이는 출판사이면서 음악을 모티프로 한 굿즈도 같이 만들고 있는 곳이에요. 또, 아파트먼트 프란츠라는 공간을 운영하면서 음악 관련 모임이나 강연, 하우스 콘서트 등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프란츠 소장의 메트로놈과 악보
Q2. 유로운에 그림을 의뢰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사실 이 공간에 판화 작품은 한 점 있어요. 그런데 페인팅 작품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거든요. 마음에 드는 그림을 만나는 게 사실 쉽지 않잖아요. 그러려면 이것저것 많이 보고, 여기저기 다녀야 하고, 시간적인 여유도 필요하고요. 현실적으로 그게 잘 안 되더라고요. 그러던 중에 유로운을 알게 됐고, ‘이거다’ 싶어서 자연스럽게 의뢰를 드리게 됐어요.
Q3. 의뢰 내용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제가 요청드린 장면은 책상 위에 오브제가 몇 가지 놓인 모습이었어요. 구체적으로는 꽃, 책, 그리고 메트로놈. 특히 메트로놈은 만 레이(Man Ray)의 작업처럼, 여성의 왼쪽 눈이 들어간 형태로 꼭 담아주셨으면 했고요.


좌|만레이의 메트로놈, 우|프란츠소장 메트로놈 <메트로놈(파괴될 오브제> 만레이, 1923 Indestructible Object (1964; replica of 1923 original)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Q4. 만 레이의 메트로놈을 구체적인 오브제로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가 메트로놈을 수집하는 게 일종의 취미예요. 프란츠 공간 여기저기에도 몇 점 놓여 있고요. 그중에서도 만 레이의 그 작품은 - 눈이 붙은 메트로놈 - 1900년대 중반의 무드나 예술과도 맞닿아 있어서, 예전부터 관심이 많았어요. 물론 제가 가지고 있는 메트로놈에 눈을 붙인다고 해서 만 레이의 작품이 되는 건 아니겠죠. 하지만 이 장면을 강예빈 작가님이 그림으로 담아주신다면, 그건 또 다른 형태의 창조라고 생각했어요. 그림 속 메트로놈을 통해, 저는 그 작품을 소장하고 늘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거니까요. 그래서 좀 구체적으로 부탁을 드렸어요.
Q5. 강예빈 작가님께 의뢰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유로운에 좋은 작가님들이 정말 많이 계셨어요. 그런데 작가님들의 예시 작품이 썸네일로 작게 보이는 화면에서 처음 강예빈 작가님의 그림을 봤을 때, 뭔가 마음이 끌리더라고요. 오브제를 하나 딱 정해서 그리는 방식이 과감하면서도 섬세하다고 느꼈고, 그게 제 취향과도 잘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이분이 그려주시면 제일 좋겠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겼어요.


김동연 대표의 의뢰 내용을 바탕으로 강예빈 작가가 제안한 2개의 에스키스 시안
Q6. 처음 에스키스를 받았을 때의 느낌은 어땠나요? 또, 최종 시안을 고른 이유는 무엇인가요?
시안을 봤을 때 제가 부탁드렸던 내용을 정말 충실하게 구현해주셨다는 느낌이 먼저 들었어요. 두 가지 구도를 제안해 주셨는데, 각기 다른 매력이 있었고 둘 다 좋아서 선택하기 힘들 정도였죠. 결국 그중에서 저는 조금 더 시선이 편안하게 머무는 쪽인 B안을 선택했어요. 다만, 에스키스만 봤을 때는 완성된 그림의 분위기가 제가 상상했던 것보다 조금 어두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런 방향으로는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작가님께 한 번 더 조심스럽게 부탁을 드렸습니다.



에스키스를 살펴보며 마음에 드는 안을 선택한다 www.yourown.kr
Q7. 완성된 작품을 처음 받아보셨을 때 어떠셨나요?
믿으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걱정이 있었어요. 에스키스와 달리 완성작의 디테일을 가까이서 봤을 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요. 만약 그렇다면 제 공간에 두고 싶지 않을 거란 생각도 들었고요. 그런데 실제로 완성된 작품을 처음 마주했을 때, 제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어요. 일단 첫인상부터 마음에 들었고요. 제가 기대했던 오브제, 색감, 구도 등 그 모든 요소들이 딱 제가 원했던 분위기 그대로였어요. 마치 작가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왔다가 나가신 것처럼, 제가 원하는 것을 그림으로 잘 꺼내주신 것처럼 느껴졌달까요. 그래서 이 그림은 제일 잘 보이는 자리에 두게 될 것 같습니다.

Q8. 유로운의 작품 의뢰 과정을 경험해보신 소감이 궁금합니다.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전체 과정이 훨씬 더 좋았어요. 무엇보다 유로운이 의뢰 과정을 굉장히 세심하게 또 매끄럽게 운영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제가 뭔가를 부탁드릴 때도 전혀 불편하지 않게, 오히려 먼저 “혹시 더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으신가요?” 하고 물어봐 주셔서 정말 마음 편하게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전반적으로 아주 좋은 경험으로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Q9. 음악과 그림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둘 다 현실에서 잠깐 발을 떼게 만들어준다는 점이 비슷하다고 느껴요. 일하던 것을 잠깐 멈추고 음악을 듣거나, 공간 한 켠의 그림을 바라볼 때처럼요. 그게 아주 긴 시간도 아니고, 잠깐이면 충분하다는 게 좋아요. 그래서 오히려 바쁜 사람일수록 음악이나 그림 같은 것들을 가까이에 두면, 정신적으로 훨씬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늘 해요. 전시장에 가야만 좋은 그림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 내 마음에 드는 그림이 내 곁에 늘 있다면, 그걸 바라보는 순간만으로도 마치 다른 어딘가에 잠깐 다녀온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잖아요.

Q10. 유로운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요?
한마디로 말하자면 “까탈스러운 사람을 위한 갤러리”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저도 그림을 사고 싶다는 마음은 늘 있지만, 정작 마음에 드는 그림을 만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고요. 아트페어를 방문해도 정말 마음에 드는 그림은 이미 팔렸거나 혹은 너무 고가여서 구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요. 그런 점에서 유로운은 까다로운 취향을 가진 사람들에게 훨씬 잘 맞는 서비스 같아요. 그림을 ‘사는’ 게 아니라, 나만의 그림을 ‘만나게 되는’ 경험이니까요.
Q11. 유로운을 어떤 분들께 추천하고 싶으신가요?
자기 취향이 확실한 분이요. 그림을 의뢰한다면 결국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스스로 어떤 것을 원하는지를 아는 사람일수록 더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막연하게만 말씀하시면 완성된 그림을 받아봤을 때 기대와 다를 수도 있을 것 같거든요. 그런데 취향이 분명한 분들이라면, 유로운에서 정말 만족스러운 경험을 하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말씀해주신 사물들이 의뢰인분께 남다른 의미와 애정으로 각인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인지 무언가를 채워넣기보다는, 오히려 비워 그리는 데에 공을 들이게 되었어요. 의뢰인분께 가상의 테이블이 있다고 가정하며, 어느 날 문득 테이블 위 풍경에 눈이 머무른 찰나를 상상하여 그렸습니다. 대상들에 이미 함축된 의미보다 새롭게 부여하실 의미의 겹이 더욱 두꺼우리라 기대하며 작업을 마무리했습니다. 모쪼록 오래, 천천히 보아주시면 좋겠습니다.”
